자운서원을 다녀오다
파주 법원리에서 약 2km정도에 위치해 있고, 입구엔 입장료 천원이라고 큼지막하게 써 있던데 평일이라서 그런지, 입장료 받는 곳에 사람이 없어 그냥 들어 갔다.
꽤 더운 날씨임에도 울창한 나무숲이 만들어 주는 그늘과 바람이 참 시원했다.
자운서원은 오천원 지폐에 그려져 있는 율곡 이이 선생을 모시고 제를 올리는 곳인데 특이 하게도 묘지를 둘러보니 율곡이이 선생의 묘지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율곡의 아버지인 이원수와 어머니 신사임당의 묘지는 율곡의 묘 밑에 있는 특이한 형태였다. 자운서원 옆으로 난 산책로를 오르다보면 약수터도 있어 목을 축일 수 있다.
경기도 파주시(坡州市) 법원읍(法院邑) 동문리(東文里)에 있는 서원. 1615년(광해군 7) 이이(李珥)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1650년(효종 1) <자운(紫雲)>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았고, 그 뒤 김장생(金長生)과 박세채(朴世采)가 추가로 제향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위패는 매안(埋安)하고 그 터에서 향사를 지내왔다. 이후 1969년에 복원되었고 1975∼1976년에 보수되었다. 팔작지붕으로 된 6칸의 사우(祠宇), 신문(神門), 동서 협문(夾門) 등이 있고, 서원의 밖에는 묘정비(廟庭碑;경기도 유형문화재 77)와 이이(李珥) 및 그 양친의 묘소가 있다. 향사의 기일은 매년 8월 중정일(中丁日;두번째 丁日)이다. 경기도지방기념물 제45호.
율곡(栗谷)
조선 중기 학자·정치가.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 본관은 덕수(德水). 강원도 강릉(江陵) 출생. 아버지는 이원수(李元秀),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師任堂申氏)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학문을 배웠고 1548년(명종 3) 13세로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51년 어머니가 죽자 파주(坡州) 자운산(紫雲山)에서 시묘한 뒤 1554년 성혼(成渾)과 도의(道義)의 교분을 맺고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한 뒤 1555년 하산하여 유학(儒學)에 전념하였다. 1558년 이황(李滉)을 방문하였고, 별시에서 《천도책(天道策)》으로 장원하였으며, 전후 9번의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어졌다. 1564년 호조좌랑이 된 뒤 예조좌랑·이조좌랑 등을 거쳐 1568년(선조 1) 천추사(千秋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明)나라에 다녀왔으며, 부교리로 춘추기사관을 겸임하여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569년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올리고, 1574년 우부승지가 되었으며 재해로 인하여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올렸다. 1575년 《성학집요(聖學輯要)》, 1577년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지었으며, 1580년 《기자실기(箕子實記)》를 편찬하였다. 1582년 이조판서가 되어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김시습전(金時習傳)》 《학교모범(學校模範)》을 지었으며, 1583년 《시무육조(時務六條)》를 계진하고 십만양병을 주청하였다. 1584년 서울 대사동(大寺洞)에서 죽어 자운산 선영하에 안장되었다. 이황과 더불어 조선시대 유학의 쌍벽을 이루는 학자로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연원을 열었다. 정통 성리학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단순히 성리학만을 고수한 것이 아니라, 불교와 노장철학(老莊哲學)을 비롯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학설과 양명학(陽明學) 등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 또한 이(理)는 무형무위(無形無爲)한 존재이고, 기(氣)는 유형유위(有形有爲)한 존재로서 이는 기의 주재자이고, 기는 이의 기재(器材)라는 이기론(理氣論)의 입장을 체계화하여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 및 기발이승론(氣發理乘論)을 주장하였다. 또한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에 대하여는 이황의 사단이발설(四端理發說)을 비판하고 사단칠정이 모두 기발이승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철학에만 조예가 깊었던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교육·국방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과 탁월한 방책을 제시하였다. 동서붕당의 조정을 위한 노력, 보국안민(保國安民)을 위한 양병론(養兵論), 폐법(弊法)의 개혁을 위한 상소, 노예의 속량(贖良)과 서얼들의 통허(通許), 향약(鄕約)·사창(社倉)의 장려, 교육의 쇄신, 경제사(經濟司) 설치의 제안 등은 모두 국리민복을 위한 그의 포부와 국량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조의 묘정(廟庭)과 문묘에 배향되었고, 파주의 자운서원, 강릉의 송담서원(松潭書院), 풍덕(豊德)의 구암서원(龜巖書院), 황주(黃州)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 등 전국 20여 개의 서원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율곡전서(栗谷全書)》가 있다. 시호는 문성(文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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